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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8 22:02
탈북민에겐 추석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94  

지난 주말 경기 안성시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흥겨운 남한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하나원을 졸업한 탈북자 60여 명이 참가한 ‘하나원 방문의 날’ 행사에서 탈북 예술단이 교육생 170명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졸업생이나 교육생이나, 추석을 앞두고 실향의 아픔을 서로 달래자는 행사였다. 이날 하나원은 1999년 개원 이래 두 번째로 외부인들에게 내부를 공개했다.

하지만 교육생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선배’ 탈북자들로 구성된 예술단 공연에 함께 웃으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도 공연 도중 눈물을 훔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보였다.

“한국에 와서 첫 추석을 이곳에서 맞으니 마음이 착잡하단 말입니다.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맞는 추석인데, 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맘이 아픕니다. 북한 가족들도 저를 생각하면서 아파할 겝니다.”

고향이 함북 청진이라고 밝힌 여성 탈북자 김지원(가명) 씨가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교육생들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격한 목소리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들의 꿈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싶다”였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이뤄질 날은 점점 더 먼 미래로 잡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북한에서 사람 빼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젠 한국까지 오는 데 한국 돈 1200만 원을 부른단 말입니다. 그 돈 언제 다 모으겠어요. 게다가 요즘엔 국경에다 철조망 다 둘러친단 말입니다. 중국에 나왔다 잡히면 가족이 한국에 있는 경우엔 무조건 정치범수용소행이지 뭡니까.”



함북 무산이 고향인 20대 여성 최수민(가명) 씨의 말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8년 전 제가 탈북할 때는 북한 국경경비대에 중국돈 100위안만 주면 안전하게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안전한 루트가 없어요. 부모 형제를 영영 다시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됩니다.”

특히 2015년은 탈북자들에게 감회가 깊은 해다. 1995년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면서 탈북자가 급증했다.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으로 넘어가는 인원이 한 해 수만 명에 육박하던 대규모 탈북 사태였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란 말이 본격 사용된 시기도 바로 1995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0년 이후 탈북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추석을 앞둔 탈북자들의 팍팍한 현실과 최근 탈북 추세를 심층 취재했다.  




▼ “달님 달님, 北에 두고온 어머니 소식 좀 전해주오” ▼



그리움에 사무친 탈북자들, 일부는 “추석 쇠는 법도 잊어”


올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추석을 맞는 탈북자 김지선(가명·29·여) 씨와 박선아(가명·28·여) 씨는 추석 명절이 반갑지 않다. 22일 기자와 만난 김 씨는 “추석 연휴가 표시된 달력을 볼 때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요즘 들어 잠을 설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씨와 박 씨는 먼 친척 사이. 지난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탈북한 이들은 중국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들이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가족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었다. 장사를 하던 김 씨의 어머니는 보위부에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은 뒤 풀려난 지 3개월 만에 숨졌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2년 동안 남몰래 탈북을 준비하던 김 씨는 지난해 7월 당시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탈북 여성 김지선(가명·왼쪽) 씨와 박선아(가명) 씨는 북한에서는 얼굴도 모르던 먼 친척사이였지만 지금은 추석을 함께 보내는 유일한 ‘가족’이다. 이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이 가슴에 더욱 사무치는 추석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박 씨도 아버지가 사업 문제로 보위부에 끌려갔다가 숨진 직후 탈북을 준비하다가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두만강을 건넜다. 추석을 앞둔 이들은 한결같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2년 전 북한에서 보낸 마지막 추석 때 모친 산소 앞에 새 비석을 세운 일을 떠올렸다. 그는 목멘 소리로 “어머니 산소에 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이어갔다. 

박 씨도 “병든 어머니를 북한에 남겨둔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형제들에게는 탈북 계획을 미리 귀띔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끝까지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행여 걱정을 끼쳐드려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 씨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엄마 목소리를 꼭 듣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탈북자들은 요즘 가족을 그리워하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1999년 입국한 장인숙 씨(75·여)는 명절만 되면 북에서 사별한 남편과 탈북 과정에서 붙잡힌 둘째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1978년 세상을 떠난 장 씨 남편의 산소는 평양 인근 공동묘지에 있다. 장 씨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망가져 있을 남편의 산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아들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간직했다가 통일 뒤 남편 묘에 같이 묻어 달라고 신산당부를 해놓았다”고 말했다. 1999년 함께 탈북하다가 보위부에 붙잡힌 둘째 아들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원에서 만난 한 탈북 여성은 “하나원은 그래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덜한데 사회에 나가서 혼자 쓸쓸히 추석을 맞으면 서러워 눈물이 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국경을 넘은 뒤 남한으로 입국하기까지 북한과 중국 당국의 눈길을 피해 장기간 접경지대에서 지낸 일부 탈북자는 추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지난주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 여성 4명은 “우린 추석 쇠는 법을 잊어버렸다”며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추석에도 특별히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그저 무덤덤하다”고 했다. 장기간 이국에서 숨어 지낸 결과 추석에 대한 기억이나 공동체 의식도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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